이글루

 원래 사람은 없었지만

 이 이글루스도 점점 버려진 사이트가 되가는 느낌이다.

 다음 달 정도쯤 해서 싸이월드 블로그로 이전작업을 수행해야겠다.

by 먼지 | 2009/11/22 23:16 | 트랙백 | 덧글(0)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위한 모든 시험을 끝냈다. 이제 내 노력을 더 보태어야 하거나, 보탤 수 있는 그런 과정은 없다. 난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가? 글쎄, 이 질문에 당당히 '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어느 정도는 노력했으나 가끔씩 나태해지기도 했었고, 뭔가 쓸데없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느정도는 열심히 한 것 같다.

 하여간 그동안 준비하던 것이 갑자기 끝나버리니 뭔가 허무함이 찾아온다. 마치 수능끝난 듯한 기분이랄까. 수능 끝났을 때와 비교하면 기쁨보다는 책임감이 밀려온다. 이제 대학생활도 끝냈으니 완전한 성인의 반열에 도달했고(물론 경제적 자립은 아직 요원하다.) 로스쿨을 합격한다 하더라도 그 동안의 널널한 대학생활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로스쿨을 합격하지 못해 재수를 해야한다면... 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리트 공부란 게 두 번은 하기 싫은 공부다.

 난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 철도 없고 숫기도 그닥이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성인남자'라는 기준치에 한참 미달한다. 물론 내가 저 '성인남자'라는 기준치에 맞추는 날은 영영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가 싫거든. 그래도 사회를 살아나갈려면 어쩔 수 없이 저 '성인남자'의 탈을 뒤집어써야하는데, 싫고 귀찮고 그런다. 휴... 어쩐지 싱숭생숭상태다. 그러니까, 뭔가 하고싶지만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은, 그런 기분.

 허나, 아직 내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려면 멀었고, 해결해야할 문제도 산더미같다. 지금 내가 누리는 정신적 사치는 아마 오늘에 한정된 것이겠지. 내일부터는 다시 열심히 살자. 죽을 때까지.

by 먼지 | 2009/11/22 23:13 | | 트랙백 | 덧글(0)

노인과 바다

 그러나 인간은 패배하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죽으면 죽었지 패배할 수는 없다.

 라고 산티아고 노인은 말했으나, 난 이미 루저인걸.

by 먼지 | 2009/11/17 10:58 | 트랙백 | 덧글(0)

근황2


1. 이 얼마만에 쓰는 글인가... 무려 한달 반만에 글을 쓴다. 반성하자.

2. 면접이 내일이다. 제기랄!

3. 와이셔츠를 입었는데 누군가가 목을 조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4. 역시 메이드 인 코리아다. 단추가 튼튼하다. 절대 떨어져나가지 않아.

5. 양복바지를 입었는데 내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6. 한달 반 전까지만 해도 울증 시기라 꽤 시크했는데, 요즘은 조금 조증인 것 같다.

7. 조증과 울증, 둘 다 싫기는 마찬가지다. 난 중도를 충구하는 사람인데.

8. 역시 중도진보가 최고다. 극좌는 극우와 마찬가지로 위험하다는 것이 내 생각.

9. 동기들은 나를 가장 잘 나가는 동기라고 부른다. 도대체 어디가???

10. 동생과 형들은 [합격하면 고기]를 부르짖고 있다. 저 뒤에 숨은 말은 뭘까.(정답: 쏴!)

11. 동생과 형들은 [불합격하면 니가(형이) 고기 (쏴)]라는 반대급부를 알고 있는 걸까.

12. ...으으음. 더 길게 쓰고 싶었는데 괄약근의 힘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오늘은 여기까지.

by 먼지 | 2009/11/12 23:53 | 잡념 | 트랙백 | 덧글(1)

근황

1. 다시 초조해진다. 내년에도 난 이곳에 있을 수 있을까.

2. 내일은 항상 새롭다는 것이 가끔은 절망적으로 느껴진다.

3. 순간의 틈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4. 난 웃고싶다. 계속 웃고싶다. 하지만 어떤 인간도 계속 웃고있을 수만은 없다. 내가 울게 된다면, 그 울음이 나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납득할 수 있다. 어떤 상황, 어떤 변수가 작용되어서 울게 된다면 난 납득할 수 없을 것이고 울음은 계속 길어질 것이다.

5. 인간이 유토피아를 원하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왜 도달하지도 못한 유토피아를 찾아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을 디스토피아로 만들어버리는가.

6. 모든 변화는 작은 곳에서 시작된다. 한번에 사회 전체를 뒤집어버릴려고 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실현되었다고 해도 유익하지 않다.

7. 법학적성시험을 꽤 훌륭하게 보고, 이제 면접 준비 중이다.

8. 말은 글보다 휘발성이 강하다. 쉽게 만들어져서 금방 나간다. 하지만, 어떤 말은 묵직하게 가슴에 남는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by 먼지 | 2009/09/20 22:48 | 잡념 | 트랙백 | 덧글(1)

싫은 곳

 싫은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싫은 곳에 가면서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이

 15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차이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싫은 곳은 싫은 곳이다.

 싫은 곳은 가기 싫은 곳이고 웃으면서 갈 수 없는 곳이다.

 나는 15년전의 나보다 조금 더 능숙하게 내 자신을 속일 수 있게됬다.

 
 언제가는 나를 속이는 나를 속일 수 있을까.
 

 

by 먼지 | 2009/09/02 22:52 | 트랙백 | 덧글(0)

살아간다

 1.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기분이 좋았다.

 2. 개강이다. 학교야 뭐... 이젠 집과 다름없는 관계로 반갑거나 그러진 않다. 다만, 이젠 출가의 시기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지나간 것들은 항상 소중하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망각이란 기능은, 과거를 통채로 지워버리는게 아니라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조정하는 것 같다. 학교에서 나쁜 일도 있었고 좋은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옛날 일이다.

 3. 과거는 손댈 수 없는 곳에 위치하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한다. 내가 유일하게 살아가는 곳은 현실인데, 현실은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숙고할 시간을 많이 주지 않는다.

 4. 내가 어디로 나아갈지,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by 먼지 | 2009/09/01 23:37 | 트랙백 | 덧글(0)

사람이 필요로하는 사람의 숫자(가준은 나)

1. 대학와서 얼굴알고 이름알고 술 같이 마신 사람이 대략 200여명 내외 정도 일 것이다. 2회 같이 술 마신 사람은 100여명 정도? 그 이상 주기적으로 같이 술 마시는 사람은 10명 정도일 것이다. 친분의 기준이 술이라면 이상하지만, 난 일단 술 들어가기 전에는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니까. 일 같이 한 사람은 셀 수 없고, 그 중에 친한 사람으로 남은 사람도 꽤 된다. 틀어진 사람도 꽤 되고 말이다.

 

2. 고등학교 때도 친한 친구가 꽤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알던 놈,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놈, 고등학교에서야 알게 된 놈이 각각 사이좋게 2명씩, 여섯 명 정도 친하게 지냈다. 얼굴이야 뭐... 고등학교 3년 생활하면 전교생 중 아싸빼고 전부 알게된다. 그 중에서 지금도 자주 만나는 놈은 1명, 가끔씩 연락이라도 오는 놈이 2명. 고등학교 때 별로 안 친했지만 지금은 왠지 친해진 놈이 1명있다.

 

3. 대학와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 중 몇 명이나 계속 연락하게 될까. 3명이면 매우 많은거고, 2명이면 많은 것, 1명이 보통일 것 같다. 1명이 안되도 별로 실망할 것 같진 않다. 어차피 그런 거니까. 어쩌면 틀어진 사이에 있던 사람과 다시 친해질 수도 있을 것이고, 대학 시절 서로 듣보잡이었던 친구와 갑자기 친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4. 난 사람 만나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 혼자 있는 걸 제일 좋아한다.허나, 사람은 사람에게 필요한거다. 내 옆에 남아있는 사람의 숫자가 아마 내 선호와 필요 사이의 적절한 합의일 것이다.

 

5. 옛날에, 그러니까 한참 중2병에 시달릴 무렵에는 사람 만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야 뭐 고독이 아름답니, 고독을 즐기니 그러고 다녔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사람 대하는 법을 모르기에 무서웠던 것이였지 싶다. 사람이 내 스트레스의 근원이었거든. 껄껄.

 

6. 뭐 지금도 낯선 사람과 마주 대하는 장소에 갈때면 손발이 심하게 오그라들곤 한다. 차라리 일 때문에 만나는 것이라면 모를까, 대단히 사적인 이유 예를 들어 소개팅이라거나 친구가 갑자기 자신의 친구을 대려올때나 하는 경우와 같이 낯선 사람을 아무 일없이 만나야 할 때마다 머리속이 하얘지고 뭔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사교성 부족이라고 할테면 해라. 난 사교성 키우고 싶은 맘도 없다, 이제는.

 

7. 그래도 그 긴 고통의 세월을 겪어오며 얻는 사람 사귀는 노하우가 몇 개 있다. 이는 말재주없고 얼굴도 안따라주며 수줍은 이에게 유용하다. 첫째는 자주 보기. 둘째는 자주 이야기하기. 셋째는 아무생각없이 대하기. 이런 상황은 대개 같이 일을 할 때 조성된다.

 

8. 이젠 나 아는 사람이 나 씹어도 별로 아무렇지도 않다. 그렇다고 나한테 무슨 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뒷담화나 앞담화도 하도 많이 들었더니 적응이 됬다. 욕 해봐라, 지 입만 아프지 그게 나한테 무슨 해가 되나? 결국 자기 행실이 문제다. 삼인성호라고 하지만, 호랑이가 없으면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도 결국 허공에 흩어지게된다. 아니땐 굴뚝엔 절대 연기 안난다. 이건 열역학 제2법칙이 보장한다.

 

9. 물론 소문의 피해가 나타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소문 의식하지 않고 그냥저냥 흘려보내면 된다. 소문은 빨리 퍼져서 빨리 무성해졌다가 빨리 사라지게 마련이다. 괴벨스씨의 말을 좀 빌리자면 대중은 우둔하고 멍청해서 잘 기억하지 못하게 마련이니까. 이상한 건, 그 대중을 이루는 개인이 우수하고 학식이 높을수록 더욱 더 멍청해진다는 것이다. 실례는 여의도와 청와대에 있다.

 

10. 결론적으로 나한테 필요한 사람의 수치는 다음과 같을 것 같다. 같이 술 마시면서 이것저것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2명(1명일 경우 그 1명의 뒷담화를 할 수 없으므로), 자주 연락하고 가끔씩 술 마시게 되는 사람 3명(저 두 명하고만 술 마시면 너무 지루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가끔씩 연락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면 반가운 사람 3명쯤. 연락하지는 않지만 일관계 혹은 장소공유관계로 만나는 사람 다수, 가뭄에 콩 나듯 연락하는, 옛날에 알았던 사람 다수는 결국 시간이 지나가면 잊혀지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너무 신경을 쏟을 필요없다. 그냥 나쁜 인상만 안 남기면 그만.

 

11. 오늘은 뭐 이정도까지만 쓰자.

 

by 먼지 | 2009/08/29 01:41 | 트랙백 | 덧글(0)

졸려

 아함... 졸려.

 술 마시고 싶어...

 젠장 낼 시험인데...

by 먼지 | 2009/08/22 20:28 | 트랙백 | 덧글(0)

실패한 인터넷 정치의 시대

 정말이지, 인터넷 정치의 시대다.

 지금은 좀 뜸한 것 같지만 작년과 올해 5월 다음 아고라는 온갓 정치적 글, 댓글, 비방, 욕설이 오고갔다. 인터넷으로 인해 당선된 최초의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보다,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각하라고 해야되나?) 시대에 인터넷 정치가 활짝 폈다. 흠... 갑자기 옛날 이야기가 생각난다. 유럽 사람들이 감자를 처음 봤을 때, 생소해서 잘 안먹는 관계로 감자를 심어놓은 밭에 [먹지 마시오]라고 해놨더니 모두 다 찾아와서 먹었다는 그런 이야기.

 뭐... 이런 상황을 놓고 좌파(아, 정말 대한민국에서 좌파란 말 쓰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일각에서는 인터넷 정치가 대의제의 대안이니, 인터넷으로 인해 직접 민주주의의 시대가 도래했느니 설레발을 떨었지만, 결국 실패로 밝혀지고 있다. 왜냐? 그건 인터넷의 특수성때문이다. 

 [아고라], [한토마]같이 정치적 의견이 모이는 인터넷 공간에는 [공론장]이라는 팻말이 붙는다. 모든 사람들, 뭐 초딩부터 70먹은 노인까지(그렇게 주장하긴 하지만, 실체를 확인할 순 없다.) 그들의 흥분된 목소리는 뉴런을 거쳐 손가락에 연결되고 키보드의 전기신호가 광랜을 타고 0과 1의 바다를 질주한다. 반복되는 0과 1의 배열들이 시신경을 통해 다시 뉴런으로 오고, 우리는 그 신호를 해석한다. 이것이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이다. 여기에는 엄밀히 말해 행동이 없다. 인터넷에서는 그저 전기 자극들이 오고갈 뿐이다.

 나는 작년 말에 인터넷에 의해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생전 처음 본, 아니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를 향해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나는 나의 직무(당시 학생회였다.)를 충실히 수행할 뿐이었다. 내가 학생회의 이름으로 데모를 나간 것도 아니었고, 국회를 점거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상한 꼬투리를 잡고 선거를 방해하겠다는 협박에 학생회로서 좌시할 수 없다는 글을 한 번 남긴 것 뿐이었다.

 그러자 썩은 고기에 파리떼가 달라붙듯이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마치, 레이드 최종보스가 된 느낌이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나는 대응하는 댓글들을 달기 시작했다. 참... 뭐랄까... 기분나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렇게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당당하게 욕을 할 수 있는건지... 정말 다들 용감했다. 조금 지나자 나는 인터넷에 통해 계속되는 지루한 설전에 지쳤다. 화도 났다. 그래서 나는 직접 만나서 대화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분들은 안 오셨다. 왠지는 모르겠다. 부끄러웠나? 글쎄...

 뭐... 이상이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다. 이상의 경험에서 나는 이런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그렇다. 인터넷은 그저 말을 뱉는 장소일 뿐이다. 절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토해진 말들은 그걸로 끝이다. 자신의 실체는 지금 집 앞의 컴퓨터에 안전하게 앉아있고, 인터넷에 있는 것은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뭐라고 해야되나. 일종의 캐릭터다. 인터넷에 있는 것은 실체가 만들어낸, 오로지 실체의 말과 생각을 인터넷 상에 옮기기 위해 만들어진, 어느 정도 실체를 닮은 캐릭터일 뿐이다.

 나는 그 사람들, 아니 그 캐릭터들을 잘못 대한 것이다. 나는 나의 캐릭터를 만들었어야만 했다. 나는 미욱하게도 나의 실체를 인터넷에 옮겼고, 내가 처절히 몸빵을 하고 있는 사이 그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를 조종해 나에게 일점사를 날렸다. 질 수 밖에! 설령 내가 그들의 캐릭터에게 피해를 입혔다해도, 그들의 실체는 온전할테니까. 실로 무적이 아닌가?

 하지만, 캐릭터들은 인터넷 상에서 무적일 뿐이다. 만약 당신이 던파를 한다고 치자. 당신이 결장에서 아무리 날려도, 유물을 끼고 있어도 그 캐릭터가 당신의 원수에게 무슨 해를 가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의 원수는 현실에 엄존하는 실체인데 말이다. 그래서 나를 공격했던 그들은 그렇게 나를 직접 대하기를 주저했던 것이다. 왜냐면, 나를 만난 그 순간부터 그들은 캐릭터가 아니니까. 실체니까. 내가 공격하면(말이든 몸이든) 당하니까.

 그렇다. 여기에 바로 인터넷의 특수성과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그 수많은 지적이고 횡설수설하는 그 의견들, 대한민국 국민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인터넷에 대한민국은 없다. 단지 광랜 사이를 뛰노는 수많은 캐릭터들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현실에서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 왜? 당하니까! 그들이 캐릭터의 옷을 벗고 실체로써 광장에 나오는 순간 전경한테 쳐맞는다. 인터넷에서 그들은 sky에 키 180에 근육질 몸매이지만 현실에서는 약한 살과 부러지기 쉬운 뼈를 가진 인간일 뿐이다.

 실로 비겁하지 않은가! 어쩔 수 없다. 인터넷을 만들어낸 미국을 탓해라. 예전, 인터넷이 없었을 때는 자신의 주장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연한 말도, 정당한 요구도 할 수 없었다. 누가 인간이 말을 하는 것을 막겠는가. 수십만이 말을 했고, 그 중 많은 수가 피를 흘렸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이제 말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필요가 없다. 인터넷이라는, 기상천외하고 안전한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비겁해서 인터넷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터넷이 있어 사람들이 비겁해진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정치가 이루어질 수 없다. 아, 가상국가를 세워 정치를 하겠다면 가능하다. 하지만 살과 뼈를 가진 인간이 하는 정치는 인터넷에 없다. 거기는 수많은 캐릭터와, 그들이 외쳐대는 함성으로 가득할 뿐이다. 인터넷에서 진보 또는 보수의 미래를 찾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시도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말을 싸지르며(정말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자신이 자신의 신념에 입각해 행동하는 줄 아는 사람은 대가리박고 반성해야 한다. 그런 사람은 그저 비겁한 사람일 뿐이다. 

 그럼 인터넷 정치는 불가능한가. 최소한, 지금 상황에서 희망은 없다. 잘 살펴보자. 대다수의 인터넷 찌질이들은 동의할 수 없겠지만 역사는 소수가 만들어나간다. 촛불, 탄핵, 노무현... 모두 최초에 나선 사람이 있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어떤 캐릭터의 소유주가 현실의 이 좆같음에 분기탱천한 나머지, 실체적 행동으로 옮긴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슈의 어떤 쪽에 동의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았고, 분기탱천하는 사람도 비록 대다수에 비하면 소수이겠지만 어느 정도 숫자가 확보될 수 있었기 때문에 나간 것이다. 

 대단한건가? 자랑할건가? 인터넷 정치의 성공인가? 아니다. 그 때 몇몇 소수외의 모든 사람들은 [설마 내가 체포되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그들은 그곳이 인터넷 토론장의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자신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그런 공간. 인터넷에서만 무적인 줄 알았던 자신이, 현실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일종의 집단 자위소. 그곳이 작년 5월의 서울광장이었다.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만약에 그곳에, 자신의 실체가 온전히 드러난다면 과연 몇이나 나왔겠는가?

 따라서, 그 촛불에는 인터넷의 절망적 특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서울광장에 모여 미사하고 법회하고 시위하고 행진하고 목이 쉬어라 외치고... 그리고? 그리고 집으로. 캐릭터는 거기까지, 지하철 타자마자 로그아웃해서 실체로 돌아오고, 바로 집으로. 자신의 힘을 과신한, 캐릭터와 실체를 구분하지 못한 몇몇 미욱한 사람들과 애초에 의도를 가지고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절대로, 절대로 내가 그 의도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이런 의도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의 캐릭터들보다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훨씬 낫다.)만이 경찰과 맞서고, 맞았던 것이다.

 결국 촛불이 무엇을 남겼는가? 이명박 대통령(...진짜 심각하게 고민된다. 총통이라고 해야되나?)에게 노이로제만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인터넷에서의 집단 공격을 당해본 입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노이로제가 심각하리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다. 인터넷 정치는 없다. 실패했다. 우리가 믿을 건 선거와 행동 뿐이다. 인터넷에서의 100장짜리 글보다, 1000개의 댓글보다 투표용지 한 장이 훨씬 중요하다. 왜 20대가 욕먹는지 아는가? 말만 요란했기 때문이다. 10대들도 말은 많았지만 최소한 그들은 20대보다 더 열심히 행동했다. 아마 10대들이 투표했으면 오늘날 요꼴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제발 부탁이니 선거일에 선거 좀 해라, 이 병신같은 그지깽깽이(선거일에 선거 안한 사람만을 지칭합니다.)들아.

 또 제발 불법에 연연하지 말아라. 4.19, 5.18, 6.10,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빛나는 날짜로 기록되고 있는 이 날들은 과연 합법적인 집회가 일어난 날이었는가? 물론, 폭력은 옳지 않다. 하지만, 강한 자의 억압에 맞서는 약한 자의 저항까지 폭력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불완전하다. 왜? 인간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은 불완전하다. 그러니까 제발 안 돌아가는 해골로 법전 쳐다보지 말고 당신 가슴에서 빛나는 양심을 쳐다봐라. 어쩌면 불법이 불법일수도 있다.


 휴... 이상이다. 제발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 특히 옛날에 나를 비방했던 그 사람들이.

by 먼지 | 2009/08/18 01:09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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